천 장의 블라우스를 만들기 위해

제목: 천장의 블라우스를 만들기 위해 - ‘세계 여성의 날’의 기원에 이어진 이야기
저자: 세레나 발리스타 글, 소니아 마리아 루체 포센티니 그림, 김지우 역
출판사: 이온서가
발행일: 2025. 03. 21.
서평: 정대련(사단법인 지혜로운여성 이사장, 전 동덕여대 교수)
흑백 톤의 표지로 만나는 그림책 『천 장의 블라우스를 만들기 위해』는 2025 볼로냐 라가치상의 논픽션 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1911년 3월 25일 129명의 여성노동자들의 생명을 앗아간 화재 사고가 발생했던 뉴욕의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의 이야기가 그림책의 소재이다. 특이하게도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화자가 당시 트라이앵글 공장의 맞은 편 상점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던 “하얀 블라우스” 이다.
글작가 세레나 발리스타는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교육자로서 이탈리아여성연합(UDI) 회장, 바스티유시의 기호평등 담당 시의원을 역임하며, 에세이 논설집 그림책 글 등을 쓰고 있다. 그림작가 소니아 마리아 루체 포센티니는 레이오 에밀리아 시의 국제만화학교 일러스트레이션 학과 교수이자 비주얼 아티스트로서, 2017년 안데르센상 수상 등 주요 일러스트 관련 상을 수상한 국제적 작가이다. 번역자 김지우는 이탈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한국에서 이탈리아어로 학위를 취득하며 현재 이탈리아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이탈리아 문학을 번역하고 있다.
신간 그림책을 찾다가 초등학년 대상 책 판매대에서 목탄화 느낌의 그림책 표지에 그려진 고요함 속에 강한 힘을 끄는 한 소녀를 발견했다. 『천 장의 블라우스를 만들기 위해』라는 책 제목과 2025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논픽션 그림책이란 메달 표식에 끌려 다가서서, “‘세계 여성의 날’의 기원에 이어진 이야기”란 부제를 발견하고 책장을 열었다. 전체적인 흐름과 분위기를 서둘러 훑어보려니, 얼핏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운 느낌이다. 결국 책 말미에 붙인 빼곡한 해설 내용을 읽고 처음부터 다시 찬찬히 읽으며 스토리의 화자(話者)가 블라우스였음을 깨닫고, 뒷표지에 언급된 몇 줄 글의 가치를 새삼 깨닫는다.
“혜성”! 하늘에서 불빛을 끌며 떨어지는 아름다운 별. 그러나 실상은 1911년 3월 25일 뉴욕 애시 빌딩 9층과 10층에 위치한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에 화마가 덮쳐, 불붙은 몸을 창문 밖으로 던져 “온 힘을 다해 커다랗게 궤도를 그리며” “뉴욕의 차가운 인도에 부딪혀 사라지는” 여성 노동자란 실체를 알고, 여성 노동자의 힘겨운 삶과 부서진 권리를 시리도록 아프게 느낀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라카타를 떠나 나폴리를 거쳐 뉴욕으로 향하는 대형 선박 갑판 위에 “압사당할 만큼” 빼곡히 서서 견디고 마침내 “눈물의 앨리스 섬”인 배에서 “육지로 배출된 비참한 생존자” 되어 운 좋게 마주한 공장 “재봉틀” 앞 한자리! 열네 살, 스무 살이 채 안된 앳된 소녀부터 어린 자녀의 배고픔과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처절한 모성들. “이중으로 잠가놓은 문”, “부러 망가뜨린 채로 방치한 화재 대피용 비상계단” 등, 삶의 질을 기대할 수 없는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일개 “인간 자본”으로서 기계 부속품처럼 하루 천 장의 블라우스를 만들어내는 일에 쫓기다가, 약속의 땅, 신세계 속 꿈을 펼칠 기회 없이 작은 혜성 되어 사라진 여성들. 그들을 불꽃 되어 추락하게 만든 이들은 기소되었지만 “하루 천 장의 블라우스로 얻은 재산 덕분에” 기어코 벌을 면하고, 천 장의 블라우스들은 여전히 커다란 배에 실려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가혹하고 불의한 현실을 지켜보던 여성들은 마침내 연대하고 “노동자 자매”가 되어 세상을 향해 고발하며 행진을 시작한다. 오직 빵의 평등권을 주창하던 프랑스 대혁명의 행진을 넘어, 화려한 장밋빛을 가슴에 품은 수많은 로즈들이 “빵을 위해, 찬란한 햇빛을 위해, 음악, 예술을 누리기 위해” 연대하고, 남성 전유물이었던 노동조합에 가입한다. 이미 40여년 전부터 여성 인권을 위한 태동을 이어온 시점이지만, 셔츠웨이스트공장의 혜성들을 기폭제로 하여, 끝내 새로운 시대적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창립이 이루어진다.
책을 들고 서서 읽는 동안 몹시 아프고 시리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책임을 확인한다. 비유적, 암시적, 상징적 어휘와 문장들이 곱씹어 읽게 하고, 어두운 색조이지만 커다랗게 또 아주 세밀하게 그려 보여주는 실제 장면들이 깊이 새기고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실 속으로 더욱 현실감 넘치게 빠져들게 한다. 실제 현상이 너무 슬퍼서, 그들의 고통이 시리도록 아파서, 흑백의 어두움과 화려한 로즈빛이 저미도록 아름다워서, 몇 번이고 펼쳐보고 가슴에 품게 되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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